일요일

2007. 12. 10. 08:07 ** 내 몰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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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갑자기 말했다. "사진 좀 찍어봐. 꼭 영화 같겠다."

아빠가 바람 쐬고 싶다고 해서 세 식구가 포천에 다녀왔다. 교정 봐야 할 번역 원고가 30장이나 남아있지만 그래도 할 수 없지. 포천 산소에 갔다가 근처 화엄사에 갔다가 또 무슨 양할아버지 산소에 들렸다가 서울로 돌아와 수락산에서 소갈비를 먹었다. 요즘엔 날마다 고기 파티다. 방사선 치료 받기 전에 많이 먹어두어야 한다고 엄마가 냉장실 냉동실까지 고기로 꽉 꽉 채웠다. 예전에 고기 너무 먹고 싶은데 엄마가 대강 먹으라고 해서 로스팜 구워 먹은 생각이 난다. 냄비에는 사골국물에 소고기 무국, 냉장실엔 소불고기랑 개고기 수육, 장조림, 냉동실엔 돼지고기랑 굴비... 아빠 덕분에 내가 고기를 실컷 먹는다. 일주일 동안 얼마나 소고기를 먹었는지 오늘은 아예 물려버렸다.

배부르게 갈비를 먹은 우리는 중계동 롯데마트에 갔다. 아빠 신발을 하나 사려고 했는데 발에 맞는게 없어서 결국 못샀다. 우리 식구는 다 발이 작다. 다음에 백화점에 가서 쿠션 좋은 운동화나 한 켤레 사기로 했다. 엄마가 한우 꼬리를 사겠다고 해서 식품매장으로 갔다. 마트 직원이 박스에서 누런 꼬리털이 붙어 있는 냉동 소꼬리를 꺼내 보여줬다. 혹시 손님들이 의심할까봐 일부러 꼬리털을 남겨둔다고 한다. 아빠가 말했다. "한우가 아닌 소도 꼬리가 누런게 있다던데. 저것도 좀 흰 털이 섞였는데?" 옆에서 엄마가 "하여간 의심도 많아."라고 대꾸했다. 난 소꼬리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 좀 놀랐다. 잘은 모르지만 내 눈엔 한우 같았다. 소꼬리를 전부 다 하면 15만원이고 반만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엄마가 살 많은 쪽으로 반만 달라고 했다. 나는 혹시라도 그 직원이 자르는 척 하면서 다른 소꼬리랑 바꿔치기 할 까봐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아빠를 닮아서 나도 의심이 많다. 아무튼 우리가 본 그 소꼬리가 그대로 나왔는데 이 직원이 일부러 그랬는지 깜빡 했는지 반만 추리지 않고 죄다 잘라 버렸다. 대신 14만원에 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그냥 다 샀다. 소꼬리 한 뭉치를 카트에 담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봤다. 나는 괜히 좀 뿌듯했다. 카운터로 나오는 길에 치즈케익이랑(아빠가 치즈를 좋아해서 엄마가 특별히 샀다. 내가 먹자고 하면 절대 안 산다) 껌이랑 곶감이랑 회사에 가져갈 컵라면 따위를 더 담았다. 생각해보니 셋이서 마트에 간 건 처음이다. 계산을 하고 주차장으로 올라가는데 아빠가 좀 앉았다 가자고 했다. 옥상 주차장 나가는 쪽에 마침 의자가 있었다. 나는 트렁크에 장본 걸 싣고 돌아와 엄아 아빠 옆에 앉았다. 엄마가 갑자기 말했다. "사진 좀 찍어봐. 꼭 영화 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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