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레어렌스 같은 남자를 만나는 상상을 했다. 난 알라배마처럼 예쁘지는 않지만 정신세계는 꽤 닮았으니까 우린 분명 좋은 한 쌍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창녀가 아닌 관계로 클레어렌스가 죽일 포주가 없다. 아니야. <스터프> 사무실로 찾아와 '이기자는 내가 데려간다. 죽기 싫으면 다들 꺼져!' 라고만 해도 오케이. 우리는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촬영용 제품과 독자 선물을 싹쓸어 담고 서울을 떠난다. 클레어렌스가 말하는거지. "내 친구중에 장물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녀석이 있어. 남해로 가자."
열받은 편집장은 업체 홍보담당자들을 시켜 우리를 뒤쫒는다. 하지만 절대 쉽지 않을걸? 그들을 보란듯이 따돌리고 무사히 거래를 마친 우리는 남해 힐튼 리조트로 간다. 클레어렌스는 앨비스의 화신과 함께 술 한잔 하러 나가고 나는 집으로 전화해 엄마 아빠에게 소식을 전한다. "걱정하지마. 평생 먹고 살 돈이 생겼어. 비행기표를 보낼게. 공항으로 나와." 그 사이 들이닥친 홍보담당자 일당. 악질 한 놈이 나를 화장실로 몰아 부치고 때리기 시작한다. "클레어렌스는 어디 갔어? 훔쳐간 물건은 벌써 팔아 먹었나? 그건 본사에도 하나밖에 남지 않은 프로모션 샘플이라고!" "미친 자식. 내가 알 게 뭐야!" 나는 잽싸게 화장실 변기 뚜껑을 들어 악질의 머리를 내려친다. 방은 온통 피범벅이 되고 나머지 녀석들을 상대할 기력을 잃어가는 순간 문을 박차고 들어온 클레어렌스. 망치를 휘둘러 나머지 일당을 반죽여 놓고 내게로 오다가 악질놈이 던진 칼에 눈을 찔린다. 나는 클레어렌스의 눈에서 칼을 뽑아 악질놈의 오른손을 잘라버린 다음 냉장고에 숨겨둔 돈가방을 챙겨 클레어렌스와 함께 리조트를 빠져나온다. "괜찮아. 자기야. 조금만 기다려. 비행기표 예약은 벌써 해 두었으니까." 공항에 도착하자 엄마와 아빠가 기다리고 있다. "토드는 벌써 수하물칸에 탔어. 쥐돌이도 같이 넣었으니 심심하지 않을거야."
결국 클레어렌스는 한 쪽 눈을 잃었지만 우리는 행복하다. 피지의 작은 섬을 하나 사서 집을 지었거든. 토드는 따뜻한 바닷물에 뛰어들어 열대어를 잡고, 밤이면 야자수 지붕 위에서 잠을 청한다. 아빠는 깨끗한 공기와 코코넛 쥬스 덕분에 씻은듯이 폐암이 나았다. 엄마는 날마다 프랜지파니 꽃으로 집안을 장식하고 조개 껍질을 줍는다. 그리고 나와 클레어렌스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을 낳았다.
타란티노가 뭐라고 하던 말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