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의 일기

2014. 1. 12. 03:11 ** 내 몰스킨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람직한 하루를 보낸 토요일이었다.

늦잠을 자고 샤워를 하고, 엄마랑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거실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똘이랑 엄마랑 같이 뒷산 산책을 하고, 사진도 찍고, 집에 와서 쉬다가 피자를 시켜 먹고,

해가 지고 나서는 티비를 켜고 VOD서비스로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재미있어서 두 번 연달아 보고,

출출해져서 아까 남은 피자 한 조각을 먹으면서 캔맥주를 마시고, 일기를 쓰고 있다.

작년 연말부터 계속 우울한 일기만 쓰고 있어서 조금 마음에 걸린다.

내 생활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일, 하나는 연애. 식구는 늘 함께하는 거니까 빼고.

일로 말할 것 같으면 폭풍의 계절을 지나 새로운 섬에 안착하는 단계랄까.

작년 7월 중순, 내 블로그에 팀장에 관한 글을 올렸다.

욕이 몇 마디 섞여 있었고, 내가 그동안 부당하다고 생각해 온 일들, 뭐 그런 것들.

팀장이라고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은 '이게 내 얘기구나' 짐작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입사 초반에 혹시나 하다가 설마 하고 잊고 있었는데, 팀장은 내 블로그를 정말로 알고 있었다.

문제의 일기를 읽고 나서 회사에 나에 대한 징계 요청을 했다. 사유는 명예훼손이었다.

징계위원회 조사 전날, 팀장은 나한테 자기 팀에 둘 수 없으니 경리부로 가라고 했다.

경리부에 가느니 회사를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두더라도 '블로그에 허위사실을 올린 애'가 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다 회사에 제출했다.

도중에 팀장은 징계 요청을 철회했고, 나는 블로그 건으로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대신 내가 '깐' 문제들 때문에 팀장은 일 개월 감봉을, 나는 경고를 받았다.

그게 작년 8월 초다.

나는 원했던 대로 팀에 남았지만 일이 줄었다. 아주 아주 많이.

블로그를 없애고 싶기도, 없애기 싫기도 했다.

없애기 싫은 마음이 더 커서 도메인만 바꾼 채로 오늘까지 끌고 왔다. 

다른 팀으로 발령 받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힘들게 버틴 보람이 있네'였다.

힘들었던 건 맞지만 보람까지는 잘 모르겠다.

팀을 옮기는 바람에 진행하던 책-마지막으로 한 권 남아 있던-을 또 넘겨야 했는데

굉장히 마음이 복잡했다. 상실감이 컸고 화도 났다.

하지만 그건 지난 일, 지난 팀의 시간이고 

앞으로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  

아, 연애는 블로그에 늘 생중계 하다시피 하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3년 전에 헤어지고 나서 단 한 번도 정식으로 '재결합'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관계를 이어 왔던 오토남과 (이번에야 말로 진짜) 그만두기로 했다.

아직 미련이 남아서 감정 조절을 못하고 있지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재작년에 오토남 차를 들이받고 나서 썼던 일기를 읽어 보니 부끄럽다.

우화한 나방은 다시 고치로 안 돌아가네 어쩌네 잘난 척해놓고 여태 이 모양이라니.

지금은 술기운에 괜찮지만 월요일 아침엔 또 운전대를 붙잡고 울지도 모른다.

그땐 '아직 눈물이 나오는 게 당연하잖아!'라고, 의연하게 넘기려고 한다.

 

나한테 이 블로그는 '말 없이 참는 돌' 같은 거다.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가슴이 터져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http://589-2.tistory.com/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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