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미나리에 미련이 남아 퇴근하고 또 텃밭에 갔다. 오늘은 회사 사람들이랑 같이 갔다.
파주 텃밭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나 포함 다섯 명이 공동경작한다. 말은 거창하지만 별거 아니다.
다들 경험이 없어, 우르르 몰려가 오늘 뭐해야 돼? 서로 물어보다 끝나는 날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은 작물은 여러 가지다.
감자, 고구마, 쌈채소, 토마토, 오이, 호박, 수세미, 부추, 파, 고추 등등.
작년에 이 밭에 깨를 심었어서 들깨는 거저 생겼다.
밭 구석구석에서 깻잎을 뜯을 수 있다.
오늘의 메인 노동은 감자잎에 붙은 벌레 죽이기였다.
노랗고 털이 숭숭 난 둥그스름한 애벌레인데 너무 징그럽다.
그리고 아무리 벌레라도 손으로 터트려 죽이는 건 내키지 않았다.
혼자 착한 척하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벌레잡기를 포기하고, 감자를 수확해도 내 몫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1인 수확조가 되어 상추잎을 뜯었다.
빨리 다 뜯고 돌미나리 해야 하는데 마음이 급했다.
돌미나리는 물길에 아무렇게나 자란 거라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겨우 쌈채소를 다 뜯고(내 몫은 아주 조금만 남기고) 돌미나리 밭으로 갈 수 있었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지난주보다 더 싱싱하고 맛있어 보였다.
줄기를 똑똑 꺾을 때마다 미나리 냄새가 났다.
사실 나는 밭에 심은 작물보다 돌미나리가 더 좋다.
7시 10분쯤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만 혼자 남았다.
나물을 잘하는 사람은 한 자리에 오래오래 앉아 뜯고,
못하는 사람은 두리번거리면서 자꾸 돌아다닌다고 엄마가 그랬다.
괜히 멀쩡한 나물만 밟아 놓는다고.
돌미나리를 뜯을 때마다 생각이 나는데
엄마는 그 얘기를 외할머니한테 들었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더 있고 싶었지만, 해가 지려고 해서 그만 일어났다.
우리 밭에 남겨두었던 쌈채소 조금이랑 깻잎을 마저 뜯어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장갑을 깜빡해서 손톱밑이 새까맣다.
채소를 쌀 때는 신문지가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