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덜너덜해진 기분으로 서울 가는 버스를 탔다.
밤 열한시쯤에나 나는 집에 도착하겠지.
정류장까지 걸어오는 길에 몸이 너무 무거워서 발이 자꾸 끌렸다.
하필이면 월요일 저녁에 비가 온다.
옆자리 과장님 우산을 빌려서 터덜터덜.
오전에는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혼자 망상에 빠져 병신된 기분.
오후에는 자동차보험 아줌마들한테 계속 전화가 오고.
엄마는 골목 하수도공사 하다 우리집 담벼락에 금 갔다고 걱정.
거기다 요즘 다니는 치과 의사가 신경을 못찾겠다고
서울대병원 가서 40만원짜리 검사를 받고 오랬다나 뭐라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회사에 휴가 내고 구청 담당자 새끼를 만나러 가서 멱살이라도 잡아야 하나.
의사 새끼를 납치해다 지하실에 가둬 놓고
우리엄마 어금니의 세 번째 신경을 찾아내라고 협박을 해야 하나.
집 인터넷은 3년 다 됐다고 계약 연장 할거냐말거냐 전화가 왔다는데.
이 담당자 새끼는 엄마가 딸한테 전화하라고 내 번호 알려줬는데도 연락이 없네.
아빠가 있었으면 뭐가 달랐을까.
적어도 담벼락에 금은 안 갔겠지 아마도.
아빠가 있었으면 엄마도 지금보다 씩씩했겠지.
아빠가 없으니까 왕보리수 가지치기도 안하고
옥상 화분에 흙도 안 갈고 집앞도 안 쓸고.
구석구석 녹슬고 헐거워지고 바래고 낡아간다.
아빠가 보고 싶다.
오늘이 더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