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애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모든 것이 과거가 되었다.
엊그제 나는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오토남의 차를 들이받았다.
충격의 강도는 서울랜드 범퍼카의 최고 속도보다 셌던 것 같다.
내 차는 앞범퍼가 아주 조금 밀려 들어갔을 뿐,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정확하게 뭘 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미 헤어졌었고, 헤어지고 싶었고, 역시 헤어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자리에 나를 두고 출발하는 뒷모습을 참을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온전한(그렇다고 내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여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저 가 버린다.
하지만 나는 떠나지 못한다.
미련을 꽉 쥐고, 손바닥 사이에서 가루가 될 때까지 놓지 않는다.
눈앞에서 그 가루가 사라지는 걸 봐야만 비로소 납득한다.
다행히 엊그제는 '납득의 순간'이 빨리 왔다.
자유로를 지나 외곽순환도로를 탈 무렵에 마음이 몹시 가벼워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과거가 되었다.
여자는 생각했다. 나는 오늘 회를 먹고 힘을 냈으니
다시는 찌질하게 쳐울지 않겠다.
이렇게 섭취한 에너지를 또라이짓 하는 데 쓰지 않겠다.
숭어와 우럭을 먹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앞으로 나를 지켜줄 것이다.
그레이트피콕나방의 고치는 통발처럼 생겼는데
우화한 나방이 안에서 빠져나올 수는 있어도 밖에서 들어갈 수는 없다.
물론, 이미 날개돋이를 한 나방이 다시 고치로 돌아가고 싶어할 리 없지만.
내가 이렇게 홀가분해질 수 있는지 미처 몰랐다.
엊그제의 메모는 고치 안에 남겨 두고
이제 나는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