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좀 보태서 백년만에 앉아간다.
석계역에서 자리가 났다.
지금 내 왼쪽 남자는 보험계약에 관한 책을 밑줄 치면서 보고 있다.
오른쪽 남자는 팔짱 끼고 자다가 방금 정신차리고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예비군훈련을 가는 모양.
긴장감 없는 전투복을 입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가까이서 살짝씩 좋은 냄새가 난다. 왼쪽 남자다.
씁쓸한 나무껍질에 비누향이 섞여 있다.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성실한 향기다. 가장이 될 준비를 하는 남자 냄새.
어쩌면 벌써 결혼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삶이 좀 고단해 보이네.
동대문에서 여고생이 탔다. 교복치마를 세 번은 접어 입은 것 같다.
허벅지가 미끈한 게 다리가 이쁘다. 얼굴은 별로다.
다시 보니 다리도 평범. 짧은 치마 덕을 보는구만.
여고생 뒤로 보이는 여자는 지난 주에 만난 외주 디자이너를 닮았다.
말랐는데 강단 있어 보인다.
아니다. 자세히 보니 히스테릭하기만한 스타일이다.
이번에 시청역이다.
왼쪽 남자는 벌써 일어났다. 키가 크다.
성실한 냄새가 멀어진다.
나도 내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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