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곳에 두더지 내외가 있으니 이 두더지는 쥐 누리에서 지체가 매우 좋은 한골양반이라. 딸 하나를 두었으되 인물과 재주가 으뜸이어서 어이의 귀해함이 그지없어 아끼는 것 없이 온갖 공부까지 시키니 애쓴 값이 나아서 자라는 대로 점점 슬기가 늘어 딴딴한 땅도 잘 파고 다른 짐승의 발자취도 잘 들으며 사람이 막 질러 잡으려 하여도 곧 뒷걸음으로 쪼르르 달아나든지 하는 재주로는 이 작은 아씨 따를 이가 이 근처에는 하나도 없으며 이뿐 아니라 주둥이의 어여쁨과 이의 구슬 꿴 듯함과 털의 야드를함과 톱의 날카로움이 마치 하늘에서나 나려온 듯하더라.
그러므로 두 어버이가 늘 아무리 하든지 딸만 못하지 아니한 사위를 골라 장하게 혼인 지낼 생각을 하더라. 그러나 좀 거북살스러운 것은 아비는 아주 완고하여서 제 딸도 다만 지체나 좋고 나룻이나 길고 등에 살이나 도둑이 진 얌점한 두더지를 선보아 사위 삼으려 하는데 어미는 아주 생각이 달라서 이 잘난 딸을 어찌 그까진 쥐에게 시집보내랴 하는 생각이 있더라. 이 까닭으로 아침저녁 밤낮에 내외의 싸움이 끊이지 아니하여 둘의 낯에 찡그린 주름이 필 새가 없더라.
하루는 어미가 다른 때보다 더 짜증을 내어 "우리 딸은 저 저녁 하늘에 총총한 별님에게로나 시집을 보내야지, 이리 귀하고 잘난 딸을 또 쥐에게 시집보내"하는지라 아비도 지지 않고 "그럼 내친 걸음에 하눌에게로 시집을 보내지, 내 생각에는 이 누리에 하눌보다 더 검검한 이가 없을 듯하고" 하매.
어미가 "그러면 그 말씀이 더 좋소. 내일 곧 통혼합시다" 하여 의논이 정하매 이튿날 내외가 하눌에 다달아 하눌님을 보입고 저의 온 이야기를 낱낱이 여쭈니. 하눌님의 대답이 아주 뜻밖이라. "응, 고맙소마는 그대네가 좀 덜 생각한 일이 있소. 내가 능히 땅을 뒤덮고 온갖을 내리고 살리고 하되 저 구름이 오직 나보다 낫소. 저 구름이 오면 내 얼굴이 가리어지오"하는데 고대에 구름이 펴어져 하눌 한낯을 덮싸는지라. 어미가 이를 보고 다시 구름에게 이르니 구름도 아까 하눌의 말 본새로 "내가 능히 하눌 땅에 가득하며 해 달을 가리되 오즉 바람이 나를 흩나니 내가 바람만 못하오"하는지라.
다시 바람에게 통하니 바람이 또 말하기를 "내가 능히 나무를 뽑고 집을 믆으며 산해를 까부르되 오즉 과천 들판에 돌미륵을 쓰러뜨리지 못하니 내가 돌미륵만 못하다"하거늘. 다시 돌미륵에게 청하니 미륵의 말이 "내가 들 가운데서 우뚝서서 까딱도 아니하되 오직 그대네 겨레의 두더지가 내 발꿈치를 파면 나도 할일없이 둥겨지오. 내가 두더지만 못하고 참"하는지라.
이 말을 듣고 아비가 말하기를 "그것 보오. 그러기에 내가 처음부터 무엇이라 하였소" 하니. 그제야 어미도 제 딸의 사냇감은 쥐가 좋을 줄 깨닫고 내외가 손목을 맞잡고 돌아와 쥐 누리에서 새서방을 맞아 사위를 삼았더라. 이는 제 분수를 모르고 주제에 넘는 일 하는 것을 경계함이러라.
<두더지 혼인, 朝鮮語文經緯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