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 Ito

2007. 7. 5. 00:57 ** 내 몰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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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이토
image ⓒ designboom.com


1977년 프랑스 마르세이유 태생. 오라 이토는 이토 모라비토의 브랜드 명이지만 마치 그의 이름처럼 되어버렸다. 그의 아버지 파스칼 모라비토는 플라세 방돔(Place Vendome)에 고급 상점을 둔 유명 디자이너였고, 삼촌인 이브 바야르(Yves Bayard)는 니스 현대미술관 건축에 참여한 바 있다. 이처럼 든든한 가족의 후광 속에서 이토는 디자인 학교에서 단 1년 만에 퇴학당하고 어렵사리 독학의 길을 걸었다.

이토가 유명 브랜드의 ‘가짜 상품’을 만들어내기로 결심했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스물 한 살이었다. 그리고는 대담하게도 루이 뷔통 가방의 광고를 멋대로 만들어냈고, 애플 맥용 휴대 케이스를 캐머플라주 무늬로 디자인하여 인터넷에 올렸다… 마치 이것들이 실제로 존재하기라도 하는 양 말이다.

이 초대형 브랜드들은 이토가 자신들의 명의를 도용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리고 열광했다! 이 상상 속에 존재하는 아이템 컬렉션은 전 세계에 소개되었고, 그리하여 최초의 브랜드의 가상적인 상품이 탄생했다. 사람들이 이 가상 아이템을 구입하려 웹사이트에 몰려들자, 픽션은 현실이 되었다.

오라 이토는 2010년의 파리에 관한 상상도를 내놓기도 했다. 그의 상상 속 파리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도시 안의 모든 기념물들이 초대형 기업들의 소유물이 된 것이다. 가령 개선문은 나이키의 3D 빌보드로, 에펠 탑은 이브 생 로랑의 사유물로 전락한다.

초기의 이토 오라가 가상적 비전을 통해 유명세를 획득했다면, 현재는 인상적인 기업 고객을 위한 ‘실제’의 제품을 만드는데 힘쓰고 있다. 2002년 오라 이토는 알루미늄 재질의 하이네켄 병으로 ‘베스트 패키징 오스카’ 상을 받았다.

그 외에도 OGO의 물병 및 광고 캠페인, 아디다스와 주프(Joop)의 향수병 디자인, 알랭 미클리, 리바이스, 카펠리니, 마지스의 브로셔 및 웹사이트용3D 이미지 제작을 비롯, 아르테미데에서는 전등을, 카펠리니와 B&B 이탈리아에서는 가구를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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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ra-ito.com



하루가장기분좋은때는언제입니까?
너무 많은데요. 잠들고, 일어나고, 샤워하고, 일하는 시간도 좋고. 하루 세 끼 식사하는 시간들도요!

주로어떤음악을듣습니까?
클럽에 간다면 일렉트로닉스를 듣고 싶죠. 집에 있다거나 차 안에서라면 힙합을 듣고요. 갱스터 같은 느낌이 나니까요(그는 곧 차창에 팔을 걸친 듯 거만한 포즈를 취하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여성과 함께 있다면 좀 더 조용하고 로맨틱한 음악으로……. 결국 기분이 어떠냐에 따라 듣는 음악도 달라지는 셈이지요. 그럴 수 있다는 게 음악의 힘이 아닐까도 싶고요.

라디오는들으십니까?
네. 음악을 들으려고요.

침대곁에두고보는책은어떤것들인가요?
건축 관련한 책들이 아주 많아요. 하지만 저는 책을 안 읽거든요. 큰 문제인데, 사실 저는 텍스트보다 이미지를 보는 편이 익숙하거든요.

새로운뉴스같은것은어디서들으시나요?
신문을 주로 읽지요.

특별히좋아하는여성들의패션스타일이있다면?
음, 약간 비치는 시스루(see-through) 타입의 상의가 최고입니다. 물론 그 사람이 제 여자친구가 아닐 때만요!

특별히 피하는 옷차림이 있습니까?
청바지.

애완동물을기르십니까?
네, 래브라도 산 개를 한 마리 키웁니다. 기차 안에서 만나 집에까지 데려왔지요. 집 안에는 애완견용 장난감이나 그런 것들이 있을 리 만무한데, 요 녀석이 방바닥에서 OGO 물병을 찾아내서는 혼자 놀기 시작하더군요. 그 때 “야, 오고!” 하고 불렀더니 귀를 펄럭이면서 제 쪽을 돌아봤어요. 그래서 이름이 OGO가 되어버렸지요.

어릴꿈이무엇이었습니까?
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또 아시다시피 어린 애들은 경찰관이 되고 싶어하기도 하고 또……. 그래요, 항상 디자이너, 건축가, 예술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요.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일을 하고 싶었다고요.

작업은주로어디에서하십니까?
침대에서요. 정말입니다. 일하기에는 최고예요……. 베개와 종이 몇 장만 있으면 되니까요. 날 찾는 전화나 방문객이 오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조용하면서도 가장 편안한 곳이니까요.

그렇게브랜드에관심을갖고있는거죠?
어렸을 적부터 브랜드에 매혹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군요. 브랜드의 역사에 매혹된 거죠. 애초에 브랜드는 꿈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물론 그 꿈을 현실화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요). 처음 브랜드에 관련한 작업을 시작했을 때, 저는 상상력의 전부를 브랜드들 그 중에서도 아이콘으로서의 의미를 획득한 최상의 브랜드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그 브랜드들의 아트 디렉터라 공공연히 선언했지요. 허가를 받지도 않고 제 디자인에 그들의 로고를 사용했어요. 누구나 ‘짝퉁’에 대해 압니다. 수많은 이미테이션 뷔통을 보세요. 하지만 사람들은 제 작품을 진짜라고 믿어버렸지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습니다. 현재 지금 저는 수많은 대형 브랜드의 아트 디렉터입니다. 꿈을 이룬 셈이죠.

누구를위해어떤디자인을하고싶으신가요?
디자인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아요……. 페라리, 보트 회사, 소니… 계속해서 그런 대형 브랜드들과 일하고 싶습니다.

작업하면서동료들과토론하고아이디어를교환하기도하십니까?
네, 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만요. 스튜디오 바깥의 친구들 중에 디자이너는 없거든요.

당신의스타일을어떤말로묘사할있을까요?당신의친한친구가설명한다면어떻게표현할지요.
단순복잡simplexity. 왜냐면 제 디자인은 꽤나 단순해보이지만, 그렇게 만들기란 매우 복잡합니다. 아디다스 향수의 경우, 시작은 단순한 드로잉에서 출발했는데, 이렇게 완성하기까지 3년이 걸렸어요. 달리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미래주의적이고… 순수하고… 강력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요.

가장만족스러웠던프로젝트는무엇이었습니까?
사실 대부분의 작업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언젠가 로스 러브그로브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네 OGO 물병이 참 좋아. 왜냐면 네 건 이렇게 둥근데, 나머지는 몽땅 길쭉하잖아… 시선을 확 잡아끈다고.”
이 거대한 시장에서는 눈에 잘 띄고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지요.

당신의번째프로젝트에서지금에이르기까지당신의작업에나타난발전에대해설명해주실있으십니까?
처음에는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또 제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별로 없는 편이었어요. 심지어 제가 디자이너가 될 지도 몰랐으니까요. 지금 제가 27살인데, 심지어 이 일을 평생 동안 하고 싶은 걸까 조차 모를 수 있지요. 약간 경험이 생기고 나니 이제는 좀 더 자신감이 붙었어요. 저만의 언어도 생겼고. 물론 최초의 디자인은 좀 지나치달까, 일종의 과시가 넘치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론 아라드나 로스 러브그로브처럼 이미 성공한 디자이너들조차 발전의 면모를 계속해서 보여주지 않습니까. 정말 대단한 일이예요.

과거의건축가나디자이너당신이특히높게평가하는사람이있다면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덕분에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재활동중인사람들중에서라면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질 않아서요.

젊은이들을위해충고하신다면?
충고라면……. 자신에 대해 불평하지 마세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아, 나는 돈도 없어. 유명하지도 않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어.’라며 툴툴댑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나이키의 말처럼 ‘그냥 해버리세요(Jjust do it)’.
실현시키세요. 결과물이 멋지다면 누군가의 눈에 띄게 될 테고, 또 사람들이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줄 겁니다. 그냥 하세요, 종이에 그리기라도 하세요. 적어도 그럼 존재하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커뮤니케이터가 되도록 하세요. 우리 세대만큼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을 한껏 누리는 세대도 없었습니다. 인터넷, 여행, 핸드폰 등등 테크놀로지를 적극 사용하면 우리 아이디어를 전 세계에 퍼뜨릴 수 있어요. 50%까지라고는 말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작업의 30%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저널리스트에게 뭔가 얘기하는 일이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스스로의 디자인에 관해 설명할 수 있지요……. 그리고 그것 역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미래에 관해 당신이 근심하는 바는 무엇인지요.
물론 실업입니다. 유럽보다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게 더 싸니까, 라며 생산지를 이전하는 기업들 덕분에 일자리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실업자들만 늘어나고 있어요. 그에 비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드는 돈은 점점 늘어나구요. 심지어 저조차 아파트 한 채도 마련하지 못할까 걱정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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