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몰스킨

이현주

8yllihc 2012. 11. 9. 20:50

 

괜찮다가, 괜찮지 않았다가, 괜찮아졌다가, 좀 위태위태했다가

그러면서 날들은 가고, 11월이 가고 12월이 오고, 올해가 가고, 내년이 오고.

 

어제는 합정에서 3시부터 6시까지 연달아 저자를 두 명 만났다.

그러고 나서 삼청동으로 갔다. 일 약속 두 개에 내 약속 하나.

전 같았으면 절대 이렇게 안 잡았을 텐데 어젠 다 괜찮았다.

오랜만에 만난 어르신이 나보고 분위기가 성숙해졌다고.

그러면서도 뭔가 한껍질 벗고 나온 것 같은 싱그러움(글로 옮기려니 좀 그러네)이 느껴진다고.

표정도 좋아 보인다고. 전혀 괴로운 시간을 보낸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이제 너도 삼십대 여자의 매력이. 멋이. 든 것...까지는 아니고 이제 출발선에 섰구나!

라고 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정말로 풍요롭고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던지 엄마를 잊지 말고, 엄마의 행복까지 고려하라고.

자기를 속물이라고 생각해도 좋으니, 부디 사회적인 조건들을 너무 무시하지는 말라고.

쥔 것 없이 시작해서 아둥바둥 살다 보면 어느새 마흔이 넘고, 그때 판을 뒤집기는 정말로 힘들다고.

또 남을 존중하라고. 믿음의 바탕에는 희생이 깔리는 거라고. 나이가 들면 잔소리가 많아진다고.

 

두 시간 중에 한 십분 정도는 지루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이해하고, 공감했다.

결국엔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어제 내린 결론이다.

스스로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 북악스카이를 탈까 말까 그 길을 가면 내 기분이 조금 우울해지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뭐 괜찮겠지, 하고 타 버렸다. 기분은 괜찮았지만 저녁 먹은 게 체했는지 멀미가 났다.

그리고 미아삼거리쯤 왔을 때 마음이 갑자기 술렁술렁하더니 뻐근하게 아팠다.

그래서 얼른, 아 내 마음이 또 일어나는구나. 여기에 집착하면 나만 괴롭고 어리석은 짓이지.

라고 생각하면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왔다.

 

집에 와서 엄마랑 한 시간쯤 이야기하고, 똘이 목덜미도 긁어주고

소화제를 먹을까 말까 하다 어제도 먹었으니 오늘은 참아 보자. 먹지 않았다.

똘이랑 내 방에 올라와서 잠들기 전까지 법륜스님 책을 읽었다.

꿈에서 어떤 남자가 차로 나를 데리러 왔길래, 내가 지금 출발해요? 했더니

아니요 도봉동 사는 사람 두 명 더 데려가야 돼요. 라고 해서 차 문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다.

아침에 엄마를 보자마자 꿈 이야기를 했더니 차 안 탔으니까 잘했네. 라고 했다.

타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어디 좋은 데 가는 거 아니었을까?

 

어젯밤에 내 방 올라가기 전에 엄마한테

나 얼굴이 좀 평화로워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응. 눈에서 독기가 빠져나가서 예뻐졌어.

오늘 운전하면서 욕도 하나도 안하고, 아무한테도 화가 안 났어. 이제 괜찮겠지? 했더니

응. 그런데 폭풍전야 같은 게 아닐까 싶어서 겁나네. 라고 했다.

 

아침에 고속도로랑 자유로에 안개가 무척 심했다.

어디서 트럭이 튀어나와 내 차를 들이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상등을 켰다.

 

오늘 퇴근하고 고모 가곡 발표회에 간다.

전 같았으면 안 갔겠지만 그냥 가보고 싶어졌다. 꽃다발도 사가려고 한다.

어제는 내 마음이 좋았는데 오늘은 불안하다. 

사람 마음이 어떻게 날마다 똑같을 수 있을까.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거다.

생각없이 감정에 끌려다니던 전과는 더 이상 같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