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몰스킨

낮에 쓰고 밤에 올리는 일기

8yllihc 2012. 7. 14. 21:52


아침 8시 반에 눈이 떠져서 아래층에 내려갔다.
엄마가 절에 간다고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똘이랑 조금 놀아주다가 엄마 나간 뒤에 다시 내 방으로 올라왔다.
지난주에는 봐야 할 자료책들이 너무 많아서 소설을 한 줄도 못 읽었다.
일로 하는 글쓰기가 지겨운 것처럼 일로 하는 책읽기도 지루하다.
물론 읽다 보면 흥미가 생겨서 집중하게 되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별로다.
특별한 목적 없이 그냥 재미있으려고 책을 읽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 방에 올라와서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제노사이드>를 읽기로 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는다.
그런데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누우면 옷이 말려올라가서 불편하다.
잘 때는 늘 옷을 하나도 안 입고 이불만 덮고 잔다. 팬티도 안 입는다.
밤에 책을 읽을 때는 어차피 문을 닫고 있으니까 상관이 없는데
낮에는 옥상방이 뻥 뚫려 있어서 신경이 쓰인다.
방문으로도 창문으로도 바깥이 다 보인다.
그렇다고 옷을 입고 침대에 눕기는 싫어서 반만 입기로 했다.
팬티랑 내가 좋아하는 아메리칸어패럴 흰색 시어저지 캡슬리브티를 입었다.
이 티는 무지 얇고 가벼워서 안 입은 것 같다. 그리고 짧아서 배꼽이 겨우 가려진다.
팬티가 빨간색이라 누가 보면 좀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이 팬티는 스판레이스라 어떤 상황에서도 들뜨지 않는 장점이 있다.
다리를 이불 위에 올려도, 무릎을 세워도, 꼬아도, 안전하고 편안하다.

침대에 누워 <제노사이드>를 펼쳤다.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비 그친 끝이라 깨끗하고 서늘한 바람이었다.
책 읽기 딱 좋은 시간이었지만, 책 읽기 좋은 시간은 잠자기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이불을 둘둘 말아 다리 사이에 끼운 지 3분 만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12시쯤 일어났다. 하루에 아침을 두 번 맞는 기분이었다.
다시 아래층에 내려가서 이를 닦고 샤워를 했다.
보송보송해진 몸에 향수를 뿌리고(지난 주에 샘플로 받은 겔랑 샬리마)
식탁에 앉아서 물을 한 컵 마신 다음, 일본어 숙제를 조금 하다가 일기를 쓰고 있다.

참, 내 빨간 팬티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지지난 주에 충동구매한 브라팬티 세트 가운데 하나로, 정말 빨갛다.
회사 화장실에서 내 종아리에 걸린 팬티를 보고 내가 깜짝 놀랐을 정도이다.
이거 너무 노골적인 거 아냐? 싶었지만
바지를 벗기, 또는 벗기기 전에는 알 수 없으니까 괜찮지 뭐. 라고 생각했다.
이 세트에는 브라 하나에 팬티가 두 개 딸려 있는데,
하나는 앞면만 레이스고 나머지 하나는 앞뒷면이 다 레이스다.
다 비쳐서 입으나마나한 팬티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마치 안 입은 듯한 팬티가 된다.
앞뒷면 레이스는 거울 앞에서 딱 한 번 입어 봤을 뿐 아직 입고 나간 적은 없다.
언제 입는 게 좋을지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