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몰스킨
소심한 편집자
8yllihc
2012. 3. 19. 21:58
4월에 나올 그림책에 곤충이 많이 나와서 감수를 받기로 했다.
팀장이 알려준 대로 감수의뢰서를 쓰고, 원서와 교정지에 표시하고, 질문지까지 따로 만들었다.
남은 건 곤충 박사님한테 전화해서 감수를 의뢰하는 것뿐!
그동안 우리 팀 책을 여러 번 봐 주셨다는데 나는 전혀 모르는 분이다.
팀장이 전화로라도 먼저 소개를 해주면 조금 편하련만 그건 내 생각이고.
아무리 일이라지만, 모르는 사람(심지어 박사님)한테 전화를 하자니 영 부담스러운 것이다.
우리 팀은 책상이 직렬 배치인데다가 사무실이 워낙 조용해서 누가 통화하면 다 들린다.
팀장이 일하는 척하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내 통화 내용을 들을 것이 분명하다.
안 그래도 말할 때 설득력 없다, 세련되지 못하다 지적 받는데
이 긴장된 첫 통화를 흠 잡을 데 없이 해낼 자신이 없었다.
아침부터 팀장이 자리를 비우기를 기다렸지만 오늘은 화장실도 안 가는 것 같다.
옆 자리 선배가 통화할 때를 틈타 묻어가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타이밍이 안 맞아 실패.
결국 핸드폰을 들고 3층 베란다로 올라갔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가벼워졌다.
곤충 박사님은 생각보다 젊고 매너가 좋았다. 얘기도 잘 끝났다.
전화를 끊고 내 자리로 돌아오는데
"이게 뭐냐. 경력이 아깝다." (는 마음의 소리가... 젠장)
다음 번 통화부터는 내 자리에서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