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몰스킨

아빠를 생각하면

8yllihc 2011. 1. 21. 14:36

월요일 밤에 아빠가 처음으로 진통제를 먹고 잤다.
마음의 준비는 진작에 끝난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나 보다.
가장 힘든 것은 아빠가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엄마와 나는 2007년 겨울처럼 슬퍼하고 있다.

아빠는 2007년 12월에 폐암진단을 받았다.
수술할 시기를 놓친 3기말 환자였다. 병원에서는 1년 6개월을 말했다.
정해진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모든 게 막연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우리는 원래 살가운 부녀 사이가 아니다.
나는 아빠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지도 못하고,
남은 날들을 차근차근 정리할 수 있도록 거들지도 못했다.
천천히 나빠지는 아빠를 지켜보며 내 시간을 살았다.

어젯밤 집에 돌아가니 아빠가 연장통을 정리하고 있었다.
꼭 필요한 것들이니까 자기가 죽어도 절대 버리지 말라고 했다.
무겁고 자리만 차지하는 그 연장통이 도대체 누구에게 필요하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면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 식구가 연장통 앞에서 통곡하는 신파 같은 광경은 상상만 해도 싫다.
아빠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절대 연장통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아빠가 죽기 전에 사용법을 배워서, 매뉴얼을 만들어 두려고 한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입원이 미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