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몰스킨

청년 백수의 마지막 평일

8yllihc 2010. 12. 11. 00:42

충동적으로 강성찬을 만나서 북한산 둘레길을 돌았다.
일찍 만났으면 더 긴 구간을 갔을 텐데 시간이 애매해서 두 시간 정도 걸었다.
평일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가끔씩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마주쳤다.
수유에서 시작해서 정릉 구간까지 갔다가 아카데미 하우스 아래쪽으로 다시 와서 커피를 마셨다.
전광수 커피던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커피집 같은 분위기였는데 알고 보니 체인점이라 약간 김샜다.
나는 더치 커피를, 강성찬은 에티오피아 어쩌고 이름이 긴 커피를 마셨다.
밖에는 비가 왔지만 우리가 앉은 자리는 따뜻하고 아늑했다.
앞으로 한동안, 어쩌면 꽤 오랫동안 이런 시간이 다시 안 올거라 생각하니 순간에 더 집중하게 되더라.
좋았다. 뭐든지 평일이 좋다.
세븐스프링스도 평일 런치가 싸고, 극장도 박물관도 놀이공원도 피부과도 평일에 가야 여유롭다.
하지만 쉬는 두 달 동안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느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연봉 협상 끝내고 이제 한숨 돌리나 했더니 내일 모레 출근이다.
아쉽지만 그래도 기대가 더 크다. 그동안 얼마나 일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커피를 마시고 우산 없이 10분쯤 걸어내려와 막창집에 갔다.
소금구이 2인분에 나는 맥주, 강성찬은 소주를 나눠 마셨다.
대학때 연애 얘기도 하고, 운동 얘기도 하고, 결혼한 오빠들 얘기도 하고,
앞으로 마흔이 넘으면 뭘할지 심각한 얘기도 했다. 일자리와 면접의 기술에 대해서도.
다시 대학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아니다. 10년 전에는 이런 얘기 안 했다.
시험, 학회, MT, 과에 도는 소문, 맨날 안 풀리는 내 연애, 윤쥬현의 새로운 농담. 
그 가벼운 얘깃거리들이 그립다. 
하지만 지금도 좋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30대가 되었고 앞으로의 일들을 고민한다.
청년 백수의 마지막 평일에 딱 어울리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