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몰스킨

운전하는 나

8yllihc 2007. 7. 30. 06:19

 

1
내가 제일 처음 운전대를 잡은 건 어두운 저녁이었다.
퇴근하고 나서 학원에 가야 했고, 겨울엔 해가 빨리 진다.
셋째 날엔가는 비가 왔다.
장내시험은 주말 낮에 학원에서 봤는데
밝은데서 운전하는 건 정말 수월하구나 생각했다.

 

2
도로 주행 연습은 자유로에서 했다.
연습면허가 나오자 마자 자유로를 달리는 기분은 대단했다.
뭐랄까... 운전 우등생이라도 된 것 같았다.
차로 한가운데로 달리는 게 가장 어려웠고
차선 변경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다행히도 나는 처음부터 시야가 꽤 넓었다.

 

3
어떤 차를 사는 게 좋을까 하는 고민은 오래전 부터 했다.
사실은 하얀색 골프 GTI를 사고 싶었다.
미끈한 옆선과 헤드그릴에 빨간 줄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드림카는 자기 돈으로 사야 하는 법이다.
프라이드 해치백과 sm3 를 두고 내내 망설였다.
색깔은 생각할 것도 없었다.
해치백이면 하얀색, 노치백은 당연히 검정색.
결국 검정 sm3 를 사기로 했다.
엄마 아빠는 프라이드를 마음에 안 들어했고,
난 '역시 내 첫번째 해치백은 골프가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
나는 르노삼성의 패밀리 룩이 썩 마음에 든다.
sm5 는 예전 디자인이 더 우아하지만
페이스 리프트한 sm3는 확실히 볼륨이 생겼다.
주변 남자의 90%가 아반떼 HD를 사라고 했어도
역시 sm3 로 하길 잘 했다 싶은 순간은...
햇빛 아래서 '반짝'  빛나는 큼직한 엠블렘을 볼 때다.
매끈하고 심플하고, 아우디 다음으로 멋지다고 생각한다.

 

5
처음엔 내부순환도로가 정말 싫었다.
좁고 구불거리고 차들은 미친듯이 달린다.
하지만 이젠 괜찮다. 오히려 좋아하게 됐다.
한 밤의 내부순환도로는 스릴이 넘친다.
외곽순환고속도로는 처음부터 좋았다.
넓고 뻥 뚫리고, 아무것도 없다.
150으로 달려도 한참을 가야 앞차를 만날 수 있다.
새벽에 이 길을 달리면 내가 없어져 버리는 것 같다.

 

6
차를 사면 꼭 가야지! 했던 곳은 없다.
늘 다니던 길을 차를 타고 달리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자꾸 출판단지 생각이 나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무작정 자유로를 달려 파주에 갔다.
내가 살던 아파트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꽃이 피어 있었다. 날이 습해서 풀 냄새도 많이 났다.
나는 갑자기 10년은 더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 안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7
차에 늘 두고 다니는 건
자동차 등록증과 사고 처리용 흰색 페인트 스프레이,
주유소에서 받은 휴지랑 물티슈, 예비 안경, 돗자리는 트렁크에,
영진 5만 지도, 3단 우산, 뒷 좌석에 쿠션 하나,
기름종이, 립밤, 투명 립글로스, 프레스드 파우더, 롤리타 'L' 스틱 샘플,
자일리톨, 알토이즈 페퍼민트.

 

8
차 안에서 듣는다.

Everything But The Girl - dr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