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 앙상세 울트라 마린

향수가 왔다. 다른 것들을 다 제쳐두고 울트라 마린부터 뿌렸다.
사실 펌핑을 하지 않아도 냄새는 잘 알고 있다.
처음 울트라 마린을 산게 벌써 7년 전이다. 으악 맙소사.
향수를 막 모으기 시작할 때 이름에 반해 덜컥 샀지.
'울트라 마린'만으로도 멋진데 앞에 붙은 '앙상세'는 정신 나간 굉장한 뭐 이런 뜻.
원래 '앙상세'라는 클래식한 향수가 있고,
울트라 마린은 서브 퍼퓸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하지만 나한테는 울트라 마린이 오리지널 느낌이다.
처음에는 이름에 속았다고 생각했다.
바다처럼 시원한 향을 기대했는데 첫향이 매울 정도로 진해서 코가 다 찡했다.
이십대 초반 여자한테 가당치도 않은 향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누구를 줘버렸다.
나한테 향수를 받은 남자는 그때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울트라 마린을 아주 열심히 뿌렸다. 그 남자한테는 첫 향수였다.
웃긴다고 생각했다. 스킨도 안 바를것 같아 보이는 남자한테서 향수 냄새가 나다니.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는거지!
전혀 향수를 뿌릴 것 같지 않은 남자한테서 향수 냄새가 나니까
그 냄새가 향수 냄새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거다.
그냥 그 사람은 '원래 그런 냄새가 나는 사람'인 것 처럼.
우리는 4월부터 급속도로 친해졌는데 (딱 이맘때다)
더울락말락한 한낮에 바람이 좀 부는 날이었던 것 같다.
늘 맡던 울트라 마린 냄새가 코로 들어오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 향수 정말 근사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냄새가 나는 가슴속으로 파고 들지 않고는 못배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향수를 뿌리다 보면 그 향기의 진짜 매력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아니, 너 여기 있었구나. 그 동안 계속 있었구나! 반가워, 고마워, 사랑해!'
라고 외치고 싶은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돈적도 있다)
그건 첫시향에서 좋고 나쁘고를 가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나한테는 울트라 마린이 그 감격적인 순간을 알려 준 첫번째 향수였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울트라 마린을 두 번 더 샀다.
한 번은 내가 쓰려고 샀다가 역시 어울리지 않아서 새로운 남자를 줘 버렸고,
또 한번은 바로 오늘이다.
두번째 남자한테 울트라 마린을 주고 나서 나는 굉장히 후회했다.
'이 자식이 내 울트라 마린을 망치고 있어!' 라고 속으로 욕했다.
내 울트라 마린?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물일곱살 먹은 착실한 남자의 울트라 마린이지.
까싯까싯한 와이셔츠를 깨끗하게 다려 입고, 지퍼 달린 가짜 넥타이를 성실하게 목에 건,
저 멀리 남해에서 태어난 남자가 뿌리던 울트라 마린이지.
아, 그렇구나. 바닷가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그렇게 잘 어울렸던가 보다.
오늘 내 메신저 대화명은 프루스트 현상이다.
그리고 앙상세 울트라 마린은 1994년에 나왔다.
허브, 민트, 삼목과 백단향.